다른 나를 발견하는 재미, 얼터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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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세대를 건너 Z세대까지 사이사이 촘촘한 시각으로 살핍니다. 트렌드를 통찰해 창의성을 높여갑니다.
그동안 보통의 우리는 단 하나의 ‘나’로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둘 이상의 정체성을 갖는 걸 때로 의아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죠. 이 명제에 새 세대가 이의를 제기합니다. Z세대는 수많은 ‘나’로 살아갑니다. 정보 통신 기술과 더불어 다채로운 모습이 삶 속에서 교차하고, 건강한 자아로서 여러 공간에 뿌리내리죠. Z세대가 즐기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 얼터 에고(Alter ego)에 관해 알아봅니다.
얼터 에고의 다른 이름 ‘부캐’
부캐는 본(本) 캐릭터의 본업과 성격을 변주하여 만든 부(副) 캐릭터를 뜻하는데요. 즉, 한 인물이 다른 자아를 확장해 생산한 캐릭터를 말합니다. 본래 온라인 게임, 인디 음악 등 서브 컬처에 쓰였지만 각종 미디어를 타고 일상에서 익숙한 용어로 자리잡았죠. 이는 3년 전 국내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가 이끄는 반짝 유행에 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부캐 콘텐츠가 인기를 구가합니다. 뒤이어 등장한 유튜브 플랫폼 채널에서 열렬한 구독자를 거느린 캐릭터들이 그 예죠. 초창기 콘텐츠와 비교해 캐릭터들은 한층 다채로운 서사를 부여받아 현재는 가히 부캐 유니버스의 시대라 부를 만합니다.
이에 ‘과몰입’ 경향을 보이는 건 Z세대입니다. 성장 환경이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Z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세상에 노출돼 자아의 유동성을 경험했는데요. 청소년기에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 등을 친밀하게 접하며 용도에 따라 계정을 만들고 여러 캐릭터를 체화했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디지털·다매체 시대가 가속화하고 온·오프라인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Z세대는 실제 삶에서도 이런 양상을 보입니다. 평범한 학생에서 어느 날 슬라임 틱톡커가 됐다가 메신저 이모티콘 작가로 변신하는 식이죠. 자신의 욕구나 목표에 맞춰 스스로를 다르게 정의하며 즐깁니다. 선망하는 대상을 그저 모방하는 게 아니라 개성을 표출하고 효능감을 발견해가며 여러 분야에 가능성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다양한 자아에 행복 분산 투자
얼터 에고의 기반 중 하나는 ‘몰입’입니다. 하나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삶을 풀어나가던 과거와 달리 Z세대는 각 정체성에 집중해 동경하는 삶을 실현합니다. 공들여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것과 같죠.
이에 더해 여러 갈래로 분배한 캐릭터들을 남에게 보여주는 데도 스스럼이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응당 복합적이고, 또 그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음을 인지하기에 취향이나 소속(역할)에 따라 다른 나를 타인과 적극 공유합니다. 이 경향은 소셜 채널 운영에도 나타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계정을 전체 대상으로 공개하는 린스타(Real instagram account)와 비공개 부계정인 핀스타(Fake instagram account)를 구분하는데요.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이죠. 조금 더 사적인 내용을 게시하거나 덕질 등 공통 관심사를 지닌 이들과 마음껏 소통하기 위해 핀스타를 개설하는 식입니다.
나아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등과 같은 신기술도 활용됩니다. 이를 통해 고정된 현실을 넘어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탐닉합니다. 가상 공간이야말로 자유로운 의사와 자기표현이 가능하니까요. 아바타로 국적·나이·성별을 초월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점도 Z세대의 흥미를 충족시킵니다. 일례로 비대면 시기 부상한 국내의 한 메타버스 플랫폼은 전 세계 이용자 중 약 80%가 10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얼터 에고의 2차 속성은 ‘일탈’입니다. 내성적인 인물이 부캐를 통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양 전에 못할 일을 과감히 시도하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쾌감도 느끼게 하는데요. 아티스트의 경우 기존에 드러낼 수 없던 성향을 부캐로 보여주거나 참신하게 다른 노선을 개척해 작품 세계를 확장한 사례가 화제를 모았습니다.
자아실현 꿈꾸는 이들의 유용한 원동력
일각에서는 Z세대가 얼터 에고를 즐기는 요인으로 적은 실패 부담을 꼽습니다. 설령 무언가 잘 해내지 못해도 그에 대한 혹평이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죠. 과감한 도전 자체로 자아실현에 유의미한 과정이라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얼터 에고를 활용해 Z세대 사이에 여러 직업을 가진 ‘N잡러’는 여느 세대보다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을 뜻하는 ‘갓생’ 열풍과 맞물린 긍정적 결과입니다. 관심 분야를 무대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또 다른 내가 활약해 부수적인 수입을 얻죠.
통계청 경제 활동 인구 조사에 의하면 2022년 1~3분기 20~30대 청년 부업자는 10만7천 명인데요. 이는 2017년에 비해 37.2%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 전반에서 관찰됩니다. 한 설문 조사 결과 44개국 Z세대 1만4천483명 중 본업 외 파트 타임 또는 풀 타임으로 부업을 하는 비율이 46%에 달했죠. 부업은 주로 첨단 기술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N잡에 나선 이유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목적’이라 답한 걸 보면 부족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Z세대의 얼터 에고에 대해 기성세대는 우려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가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밝힌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복제본이 원본과 연관성을 잃어버리고 원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을 경계한 것인데요. 정체성 간 빚어질 혼란을 염려하는 목소리입니다.
그럼에도 큰 물결은 도도합니다. Z세대는 인생 중 배우는 시절의 본분을 지키는 모습도, 좋아하는 것을 거칠 것 없이 즐기는 모습도 모두 소중한 자신의 정체성이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마저 성장을 위해 당연히 직면할 미션입니다. 원본과 복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Z세대는 얼터 에고를 세상 살아가는 제2의 원동력으로 지혜롭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참고 · 통계청 [경제 활동 인구 조사]·2022
딜로이트 [2023 글로벌 Gen Z & Millennial 서베이]·2023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1981
한국문예창작학회 [멀티 페르소나의 사례와 의미-‘부캐’를 중심으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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