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같은 발명 인생
지난 이야기우아한 화학
우아한 화학
‘일상을 바꾼 화학’을 주제로 읽기 좋고 이해하기 쉬운 지식 정보를 제공합니다. 인간 삶을 한차원 높은 수준으로 개선한 화학사를 포함합니다.
역사에서 당대와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는 많습니다. 모두가 우러르는 몇몇 예술가도 당시에는 그저 한량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전체를 관류하는 일관된 가치나 업적을 남기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험으로 입증한 사실과 정확한 데이터를 내세우는 과학에도 평가가 엇갈릴 수 있을까요? 당연히 ‘Yes’ 입니다. 지식 발전에 대한 가치나 신념을 추구하는 세계에서조차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리하고도 치명적인 납
토머스 미즐리(Thomas Midgley, 1889~1944)는 미국의 응용화학자입니다. 생전에 세상을 뒤흔든 새 발견들로 ‘발명왕’ 칭호를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기(大氣)의 파괴자로 불리는 슬픈 운명의 과학자이죠.
1911년 코넬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연구원으로 일하며 100여 개 넘는 특허 기술을 내놓습니다. 그의 발명은 당시 독보적이었으나 이후에는 정말 다양한 악평을 듣게 되지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생애 평가를 받습니다.
유연휘발유가 대표적입니다. 자동차에 흔히 쓰이는 가솔린 엔진은 불꽃 점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불이 꼭 원할 때만 붙지 않는다는 것이죠. 엔진 점화가 적절하지 않은 시점에 일어나는 것을 노킹(Knocking)이라고 합니다. 노킹이 빈번히 발생하면 연료 효율이 떨어지고 엔진 수명도 짧아집니다. 옥탄가(Octane number)는 이런 노킹이 발생하는 빈도를 뜻하는데요. 옥탄가가 높을수록 노킹이 적게 발생하는 식입니다.
1921년, 제너럴모터스(GM) 산하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토머스 미즐리는 테트라에틸납 (TELㆍTetraethyllead)을 휘발유에 첨가하면 엔진이 노킹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연구소는 이 물질을 에틸(Ethyl)이라고 홍보했죠. 납이라니 그야말로 오싹하지만 당시 납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치명적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막연한 판단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가격과 효과는 긍정적이었습니다. 그의 발견은 칭송 받았고 테트라에틸납을 첨가한 휘발유는 곧 전 세계에 퍼졌죠. 미즐리는 이 공로로 권위있는 화학상, 발명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하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댕솔이의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휘발유는 무연휘발유입니다. 여기서 연은 납연(鉛)자입니다. 미즐리의 휘발유는 테트라에틸납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유연휘발유입니다. 편리함을 장착했더니 극도의 위기가 따라온 셈이었죠.
납의 독성은 예상보다 훨씬 위험했습니다. 사용량이 늘어나자 대기 중 납 농도가 상승했고 같은 대기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혈중 납 농도도 덩달아 올라갔습니다. 공장 인부들은 납중독으로 죽거나 팔다리 등이 마비되는 사고를 겪습니다. 심지어 미즐리조차 납중독으로 1년간 요양했다고 하니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유연휘발유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무연휘발유 판매가 시작됐거든요. 2020년 알제리를 끝으로 현재는 모든 국가에서 유연휘발유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유연휘발유가 사용되기 전 대기에는 납성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어느 곳의 대기에서도 납성분이 검출됩니다. 과거 한 과학자와 자본의 판단 실수 그리고 오만이 만들어낸 씁쓸한 결과입니다.
존재감 드러낸 오존층
미즐리의 흑역사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930년 GM사는 미즐리에게 냉장고 냉매의 개발을 맡깁니다. 당시 냉장고는 암모니아를 냉매로 사용했는데 유독 물질로 사용이 까다로웠습니다. 냉매가 유출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났고 강한 독성 때문에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죠.
미즐리는 발명왕답게 뚝딱 새 냉매를 찾아냅니다. 바로 그 유명한 염화불화탄소(CFCㆍChlorofluorocarbon)입니다. 여기에는 프레온이란 이름이 붙고 적극적인 사용이 장려됩니다.
그는 프레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직접 프레온 가스를 마시고 불을 끄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안전성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신체에 아무런 해가 없습니다. 실제로 프레온은 암모니아 냉매를 대부분 대체했으며 유출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었죠. 상한 음식으로 인한 질병이 줄어들었으며 백신의 냉동 보관이 가능해 의료분야에도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는 불특정 다수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사람들은 꿈의 신물질이 나왔다며 열광했습니다. 프레온 가스는 냉매뿐 아니라 스프레이나 약의 흡입기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고 미즐리는 또 다시 과학상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또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즐리조차 예상치 못한 엄청난 재앙이었죠. 프레온 가스에서 나온 염소가 오존 분자를 산소 분자로 분해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 된 것이죠. 프레온 가스는 결과적으로 강한 온실효과를 일으켜 지구 표면과 대류권의 온도를 상승시킵니다.
결국 1987년 합의된 몬트리올 의정서(Montreal Protocol on Substances that Deplete the Ozone Layer)에 의해 프레온 가스 사용이 단계별로 감축됩니다. 그리고 2010년을 끝으로 제조ㆍ판매ㆍ유통ㆍ사용이 완전히 금지됐습니다. 인류 스스로 재앙을 만들었으니 어찌보면 참혹합니다.
발명왕의 비범한 최후
50대 후반의 미즐리는 소아마비에 걸려 더 이상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도 발명을 이어갑니다. 몸이 불편한 환자를 쉽게 일으킬 수 있는 밧줄과 도르래 장치를 고안한 것이죠.
그가 만든 발명품 중 유일하게 인류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도리어 그 자신에게는 화가 됩니다. 1944년 미즐리는 자신이 고안한 기계의 작동 과정에서 끈에 목이 감겨 생을 마감합니다. 마치 그의 발명이 처음에는 유용했다가 끝이 좋지 않았던 것처럼요. 세상 많은 분야에 한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던 발명의 최후가 비극의 역설로 마침표를 찍은 순간입니다.
토머스 미즐리는 위대한 발견을 이끈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했습니다. 심지어 ‘지구 역사상 환경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친 단일 생명체’라는 극악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과 환경보호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앞으로도 악명만이 더 쌓이겠지요.
그가 죽고 나서도 역사는 계속되고 기술 발전도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현대에 이르러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비난받는 미즐리처럼 모든 평가는 유동적입니다. 종합하자면 발명이란 화려한 첫 탄생보다 기술 정착과 지속가능성이 몇 배는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미래 지구를 생각해서라도 환경 수호에 가치를 둔 발명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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