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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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

오지게 오지여행

소외된 지역 여정을 통해 글로벌 지역 환경의 보존 가치를 일깨웁니다. 자유롭게 오가는 날을 그리며 새 여행지로 안내합니다.

2005년 이야기입니다. 아득한 옛날입니다. 당시 중국 간쑤성의 란저우[兰州]와 둔황[敦煌]을 거쳐 칭하이성[青海省]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티베트(Tibet)입니다. 아직 티베트와 중국 본토를 연결하는 칭창열차가 운행되지 않던 시절입니다. 교통이 없으니 정보도 드물었죠. 그럼에도 여행자는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 존재입니다.

묵직한 작별의 티베트
해맑은 얼굴의 소년승들. 티베트 불교는 각 지역 문화와 토속신앙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속임수 통하던 낭만 시절

열차 운행 이전 티베트로 가는 방법은 오직 세 가지였습니다.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꺼얼무[格尔木]까지 직접 가서 티베트행 버스를 탑니다. 마지막으로 네팔 카트만두에서 출발하는 단체여행에 합류하는 것이죠. 가난한 여행자는 대부분 꺼얼무에서 티베트의 라싸(Lhasa)로 들어갑니다.

당시 기준 기차의 종착역인 꺼얼무로 갔습니다.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2천809m의 도시에서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 옵니다. 문제는 비자였습니다. 티베트를 방문하려면 중국 비자 외 별도의 여행 허가서가 필요합니다. 발급비용은 대략 1천750위안(CNY), 당시 물가로 우리 돈 21만 원 수준입니다. 허가서가 없는 외국인은 티베트로 가는 어떤 교통 수단에도 탑승할 수 없습니다.

묵직한 작별의 티베트
이동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티베트행 관광버스. 경비를 아끼고자 버스 기사에게 중국인이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요금 인하는 물론 비슷한 사진이 인쇄된 신분증까지 내밀었다.

솔직히 21만 원을 낼 요량이었다면 비행기를 탔지 산간벽지까지 가지도 않았겠죠. 꺼얼무는 1954년 티베트로 가는 도로를 닦기 위해 조성한 중간 기지입니다. 쉽게 말해 큰 볼거리 없는 산업 도시입니다.

여행자들끼리 주고받던 풍문을 기억해 묘책을 떠올렸습니다. 중국인과 외모가 비슷한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적당한 금액을 버스 기사에게 주면 현지인 요금으로 태워준다는 것이었죠. 모른 척 변장을 하고 최대한 현지인처럼 말하며 기사를 속여 성공했습니다. 나름 낭만이 통하던 시절입니다. 물론 지금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요.

빛을 잃어가는 미지의 세계

묵직한 작별의 티베트
라싸에 위치한 포탈라궁(Potala Palace) 전경. 달라이 라마의 거주지였으며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이다. 동아시아에 위치한 어떠한 단일 전통 건축물보다 면적이 크다.

버스는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쉬지 않고 온종일 달리면 다음날 오후 4~5시가 돼야 라싸에 도착합니다. 정확하게 34시간 정도 걸리는 셈이죠. 도로 바깥 풍경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건설 현장이었습니다.  

티베트는 고원지대라 농사 지을 만한 땅이 드뭅니다. 그래서 티베트 왕국 시절에 곡식은 물론 푸성귀조차 무척 귀했다고 합니다. 보릿가루를 볶은 ‘짬바’라는 음식으로 겨울을 버티곤 했지요. 우리네 미숫가루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대규모 철도 공사를 시작으로 조금씩 중국의 영향력이 뻗치면서 과거 모습들은 희미해져 갑니다.

묵직한 작별의 티베트
포탈라궁 앞에서 기도하는 티베트 사람들. 소박함과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티베트는 인도ㆍ네팔과 함께 자아실현의 천국이자 미지의 세계로 통했습니다. 불교 국가라는 특수성과 현대 도시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신비한 광경이 많았으니까요. 당장 포탈라궁만 해도 진정 이색적인 명소입니다.

포탈라궁은 도도한 서양식 궁전이나 화려한 규모를 앞세운 중국의 여느 궁과 분명 다릅니다. 거대한 산맥과 만년설에 둘러싸여 붉은색으로 빛나는 성스러운 요새 그 자체입니다. 여기저기서 힐링을 앞세운 여행객들로 티베트 곳곳이 들썩인 것은 당연합니다.

관광객들을 부지런히 실어나르던 티베트 철도는 희망이자 곧 절망입니다.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철도 건설의 끝자락을 마주했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접근이 편해진 순간부터 외지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니까요.

끝없이 기도하는 마음

어느 밤, 마침 보름이라 날이 밝았고 어슴푸레 설산도 보였습니다. 티베트 산맥의 능선은 대부분 거칠고 웅장합니다. 어떤 몽상가도 쉽게 상상하지 못할 굵은 선과 점이 세차게 이어집니다.

묵직한 작별의 티베트
티베트 어딜가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경찰의 감시가 뒤따른다. 미지의 세계라는 이미지는 여행객과 자본이 만든 것이다.

한동안 넋을 잃고 주변 경관에 취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 멀리 한 무리의 짐승을 발견합니다. 태평하게 앉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이내 늑대무리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열 마리 정도의 늑대가 관광버스와 사람들을 지긋이 내려다 봤습니다. 티베트의 늑대는 멸종위기종에 속할 만큼 소중한 존재입니다.

무서움은 잠시, 생전 처음 보는 야생 늑대의 우아함에 빠져들었습니다. 단순한 착각일까요. 지금도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합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줄기를 따라 전율을 느꼈습니다. 당대의 문장가들이 왜 찰나의 만남에 그토록 의미를 부여하는지 오랜 의문도 해소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늑대들이 이 산맥의 마지막 개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기억에서 늑대가 희미해진 지금에야 이별을 깨닫습니다. 거스르지 못할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묵직한 작별의 티베트
티베트 남서부에서 발원해 히말라야 북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야룽창포강. 아쉽게도 이곳에는 곧 중국 자본의 대형 댐이 건설될 계획이다.

2006년 칭창열차가 개통됐습니다. 현재는 중국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청두는 물론 홍콩에서 고작 두 시간 거리인 광저우[广州]에서도 라싸행 기차를 탈 수 있습니다. 교통이 편해지고 더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갑니다. 태생적으로 취약한 티베트의 환경과 생태계는 그에 비례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있고요.

최근 중국 정부는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日喀則]까지 이어진 철도를 더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긴 터널을 뚫어 에베레스트산을 통과해 네팔 카트만두까지 연결한다는 목표입니다. 여행은 편해질 겁니다. 하지만 그때 만났던 티베트의 우아한 늑대와는 이제 영영 작별이겠죠.


INFO. 티베트 (Tibet)
중국 남서부에 위치하며 정식 명칭은 티베트족 자치구이다.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 광활한 초원, 연중 녹지 않는 만년설, 울창한 숲과 강, 불교 명소 등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2010년대까지 이어진 독립 운동으로 현재 개별적인 자유 여행은 불가능하지만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 여행은 할 수 있다. 다만 방문지는 제한적이며 일정이 끝난 뒤 시내를 혼자 구경하는 것도 어렵다.
– 면적 : 122만8천400㎢
– 기후 : 한랭 건조 사막 기후
– 언어 : 티베트어
– 인구 : 약 300만 명
– 교통 : 중국 각 지역 철도 또는 서울발 직항 노선 이용 (현재 코로나 팬데믹에 따라 탄력 운행)
– 전압 : 230V · 50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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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외교부 (www.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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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환타
인도, 중국, 일본에서 주로 서식한다. 지금까지 총 11권의 여행안내서와 에세이를 냈다. 여행과 함께 세상사에 대한 관심으로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여행을 빙자한 국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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