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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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7 |

오지게 오지여행

소외된 지역 여정을 통해 글로벌 지역 환경의 보존 가치를 일깨웁니다. 자유롭게 오가는 날을 그리며 새 여행지로 안내합니다.

파키스탄으로 총총 떠나는 이유
파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훈자는 ‘블랙홀’로 불릴만큼 매력적인 여행지로 손꼽힌다.
< 출처: 펙셀스 (www.pexels.com) >

어느 봄 인도(India)에서 파키스탄(Pakistan)으로 향합니다. 인도측 입국심사관은 지금까지 스무 번은 들었을 법한 말을 반복합니다.

“잘 생각해봐 친구. 지금 선을 넘는 즉시 파키스탄으로 간다고. 지구상에서 제일 악랄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 돌아가지 그래.”

입국심사관만 아니면 한바탕하겠지만 일부러 그들의 심사를 틀어지게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이제 파키스탄측 입국심사관의 비위를 맞출 차례입니다.

자네는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군. 10억 명도 넘는 거짓말쟁이들에 속아서 얼마나 힘들었나. 대한민국에서 왔다니 정말 사리분별력이 뛰어나네. 기꺼이 입국심사 도장을 찍어주지.”

튼튼한 엉덩이로 8시간 버티기

파키스탄으로 총총 떠나는 이유
대부분 오지가 그렇듯 파키스탄의 도로 사정도 좋지 못하다. 신기하게도 파키스탄에는 국내 대우그룹이 세운 고속버스 회사(대우버스)가 아직도 영업 중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경을 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위치한 산간 마을 훈자(Hunza)로 가기 위함입니다. 여행 고수가 아니라면 조금은 낯선 지역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쩐지 익숙합니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육로로 파키스탄까지 넘어가려면 단순히 험하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버스 오래 타는 걸로는 잔뼈가 굵었을 만큼 튼튼한 엉덩이를 자부하지만 여긴 정말 다릅니다. 일단 파키스탄 국경에서 승합차를 타고 라호르(Lahore)로 갑니다. 이후 약 374㎞ 떨어진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까지 다시 이동합니다.

파키스탄은 모든 게 느립니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좋다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이동해도 8시간은 기본입니다. 물론 제일 빠른 운행 기준입니다. 완행 차량을 이용하면 꼬박 12시간이 걸리는 길입니다.

파키스탄으로 총총 떠나는 이유
장수 마을로 유명한 길기트는 카라코람 산맥 등반을 위한 중간 기지이며 스카르두로 가는 갈림길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최종 목적지인 훈자로 가려면 길기트(Gilgit)를 경유합니다. 두 지역은 약 750㎞ 떨어져 있기에 아픔을 참고 17시간을 더 달립니다.

해발 1천500m 저지대에 위치한 길기트는 중국과 경계를 두고 있는 마을입니다. 카라코람 산맥과 스카르두 그리고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라다크까지 연결하는 고대 교역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랜 기간 불교도들의 땅이었고 중국의 순례자 법현과 현장도 방문했습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곳에서 무난한 트레킹과 등반을 즐깁니다.

길기트에서 다시 훈자까지는 약 100㎞ 거리입니다. 고도차가 심한 데다 길도 구불구불해서 아무리 빨라도 도착까지 네 시간은 더 필요합니다.

봄에 만나는 천국과 지옥

파키스탄으로 총총 떠나는 이유
계단식 농업이 대부분인 훈자는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하다. 대신 살구나무는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은 살구를 따러 이동하는 현지인들의 모습.

해마다 5월은 훈자 계곡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시기입니다. 슬슬 카라코람 산맥의 빙하도 녹을 때라 땅이 물러지고 살구꽃이 주변을 가득 채웁니다. 이동하는 길조차 장관입니다. 선명한 색과 훈훈한 향이 여행자 마음을 들썩이게 합니다.  

사진만 봐도 무척 멋있습니다. 사람들은 봄의 훈자를 일컬어 천국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천국 옆에는 반드시 지옥도 있음을 번번이 놓칩니다.

아무리 간이 큰 사람이라고 한들 이곳에서는 공포를 느낍니다. 훈자 계곡은 산의 사면을 따라 바위를 깎아 만든 길입니다. 땅이 녹기 시작하면 바위가 그대로 떨어지거나 모래가 잔뜩 쓸려 내려옵니다. 재난 영화를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셈이죠.

파키스탄으로 총총 떠나는 이유
영화처럼 아름다운 풍광과 짜릿함을 동시에 선물하는 훈자 계곡. 오지 경험이 드문 여행자는 계곡을 오르는 내내 소리를 지른다.
< 출처: 펙셀스 (www.pexels.com) >

돌조각과 모래 파편이 심하게 떨어질 경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합니다. 사면의 반대편이 벼랑으로 밀려나 차량이 떨어지는 사고도 발생합니다.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 종이처럼 구겨진 트럭이 보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세상과 이별합니다.

환경과 개발, 두 마리 토끼 잡기

사실 파키스탄은 강경한 이슬람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고 정치도 불안정합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빠진 일본인과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외국인 관광객도 한정적입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파키스탄도 점차 경제가 발달하며 신흥 부자들이 탄생합니다. 여가가 발달하면서 훈자로 가는 길 주변에 공사가 한창입니다. 입소문만으로 알음알음 찾던 이곳에 내외국인 관광객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중국인 여행자들도 주변 일대를 즐겨 찾습니다. 자연스레 중국 자본에 의한 개발 사례가 등장합니다.

파키스탄으로 총총 떠나는 이유
파키스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관광업 비중을 과거보다 확대할 계획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현재 훈자 주변의 리조트 건설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 출처: 펙셀스 (www.pexels.com) >

어디서나 내 적의 적은 친구죠. 히말라야 국경 지대에서 인도와 중국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파키스탄의 친중 행보는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중국 자본으로 만든 스키장과 리조트를 매개로 해마다 관광객 50만 명을 유치하려는 청사진을 내세웁니다.

세상의 눈초리는 매섭습니다. 아름다운 대자연이 난개발로 사라질 수 있다는 불만도 제기됩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단호한 입장을 취합니다. 2019년 6월 조례를 통과시켜 비닐백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합니다. 외부 자본과 상관없이 환경과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파키스탄으로 총총 떠나는 이유
중국 자본의 투입으로 대규모 관광 단지 건설 계획 등이 발표되자 파키스탄 정부는 지구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훈자를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온난화로 영구동토층(2년 이상 토양이 0℃ 이하로 유지되는 곳)이 녹으면서 콘크리트 도로가 물렁해지는 현상을 곳곳에서 목격합니다. 코로나 이후 기존보다 도로 교통량이 크게 증가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훈자 계곡에 도착해 가장 높은 산인 라카포시(Rakaposhi)를 마주합니다. 산의 위용에 압도돼 잠시 근심이 사라집니다. 이 거대한 풍경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요. 인간은 편리함이라는 이유로 또 어떤 거대한 상징물을 만들어서 산의 모습을 가릴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달리 답은 확실합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감상하려면 반드시 여행을 서둘러야 합니다.


INFO. 파키스탄 (Pakistan)
1947년 8월 14일 독립했다. 남아시아 인도의 서쪽 부근에 위치한다. 인구 97% 이상이 무슬림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다.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 다양한 유적을 갖췄으며 초기 불교 유적 덕분에 성지순례 관광객의 비중이 높다.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고 여러가지 위험 요소가 많은 관계로 개별 여행은 쉽지 않다. 훈자까지는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카라치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길기트에 도착한 후 차량으로 이동한다.
– 면적 : 88만1천913㎢
– 기후 : 고온건조 아열대 기후
– 언어 : 우르두어, 영어
– 인구 : 약 2억770만 명
– 수도 : 이슬라마바드 (Islamabad)
– 전압 : 230V · 50HZ
– 화폐 : 루피 (PKR, 1천 루피 = 약 7천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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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외교부 (www.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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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환타
인도, 중국, 일본에서 주로 서식한다. 지금까지 총 11권의 여행안내서와 에세이를 냈다. 여행과 함께 세상사에 대한 관심으로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여행을 빙자한 국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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